[잠망경] 미국식 교장 선생
옛날에 육군 군의관으로 임관하기 전 훈련병 시절 스트레스가 심했던 기억이 난다. 병동 입원환자들의 단체생활을 보면서 가끔 일어나는 연상작용이다. 단체의 스케줄에 따르는 삶은 자유행동의 여지가 별로 없다. 기상, 취침, 프로그램 참가, 식사 시간이 늘 일정하다. 아침마다 거행되는 ‘community meeting’도 그렇다. 고리타분한 번역으로 ‘반상회(班常會)’, 또는 그냥 ‘커뮤니티 미팅’이라 사전에 나와 있는 말을 나는 ‘조회(朝會)’라 부른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듣던 기억이 새롭다. 며칠 전 조회 시간에 ‘wheeling and dealing’을 화제로 삼았다. 노름꾼 사이에 유행했던 슬랭. 쉽게 말해서 ‘부정거래’라는 뜻. 정치가들 사이에 돈이 오가는 상황을 의미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다. 환자들 간에 음식이나 간식을 사고팔아서 돈을 버는 일도 이렇게 부른다.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갈등을 일어나는 상황이 빈번하다. 토론을 조장하는 미국식 교장 선생 티를 내면서 물어본다. “너희들은 왜들 부정거래를 하느냐?” 한 20대 환자가 볼멘소리로 응답한다. “배가 고파서 그럽니다!” “다음 끼니까지 참기가 힘드냐?” “나는 참을성이 없어요!” 너,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떠드느냐, 하는 반응을 짐짓 억제하는 교장 선생님. 요즘 세상은 누구를 나무라는 발언을 삼가야 하느니라. 1972년 스탠퍼드 대학은 대여섯 살 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Delayed Gratification, 지연 만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른바 ‘Marshmallow experiment, 마시멜로 실험’으로 널리 알려진 연구발표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접시에 담아주면서 그것을 먹지 않고 기다리면 15분 후에 한 개를 더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달콤한 과자를 냉큼 먹어버리면 그것으로 과자는 끝이라는 점도 충분히 설명한다. 일부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서 흡족한 보상을 받고, 먹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 애들은 아무 보상이 없는 연구설정이다. 1988년과 1990년에 같은 연구팀의 후속 보고에 의하면 참을성 있는 그룹은 반대 그룹보다 수능성적이 현저하게 높고 사회 적응 능력이 월등하다는 결론이다. 그 후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연구를 해서 의견의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지금껏 아무도 ‘마시멜로 실험’을 전면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맞다 맞다.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가 참을성이 없다고 떠들어댄 환자를 힐끔힐끔 살펴가면서 나는 만족을 미루는 습관의 장점을 강조한다. ‘Patience is a virtue, 인내는 미덕이다’라는 격언도 역설한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반론을 펼치는 그 환자. “Delayed gratification is depressing.” “지연 만족은 속상합니다.”-“With no hope, there’s no delayed gratification, 희망이 없으면 지연 만족도 없습니다.” 교장 선생이 속으로 발끈한다. 지연 만족이 싫어서 아예 처음부터 희망을 품지 않겠다고? 발음하기도 힘든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빌리에 드 릴라당의 단편 소설,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이 ‘희망 고문’ 컨셉의 오리진이라 한다. 평소에 ‘남의 퍼레이드에 빗물 끼얹기(to rain on someone’s parade)’를 즐기는 그에 대해 “철딱서니 없는 그놈이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러는 게 틀림없어” 하고 나는 뇌까린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미국 교장 교장 선생님 gratification 희망 gratification 지연